야송 이원좌 野松 李元佐

1939년 4월 – 2019년 4월
화가 이원좌
그는 대한민국 강산의 아름다움에 사로잡혀 전국를 걷고 또 걸었다. 두눈과 온몸으로 감상한 세상을 수묵 화폭에 그려 내는 일을 평생 멈추지 않았다. 화선지는 물론이오 그림을 그려낼 수 있다 생각되는 주변의 편평한 것들이라면 버려진 나무판조차 허투루 다루지 않았다.
그의 셀수 없이 많은 작품들을 하나하나 들춰보면 어느 하나 소홀히 낮출수 없으며 한장 한장 모두가 담고 있는 우리 강산의 아름다움에 감탄하게 된다.
지독히도 고집스래 몰두해온 화가의 업에 대한 수많은 일화중 하나를 들춰 보면 그림에 대한 그의 집착을 짐작해 볼 수 있다.
어느해 그림이 잘그려 진다며 천여장의 수석을 그려내는 강행군 탓에 오른팔을 편히 움직일 수 없어 고생하는 모습을보고 누군가 물었을때의 이야기다.

"팔이 그리 불편하면 잠시 붓을 내려놓고 회복 부터 해야 되지 않겠소?"

"오른팔이 아프면 왼팔로 그리고, 왼팔이 고장나면 두 다리가 있고, 두 다리마저 쓸수 없으면 입에 붓을 물고 그리면 되니 쓸대없는 걱정은 내려 놓으시게."

"왜 그리 그림에 집착해 몸까지 험히 다루는것인가요?"

"전국 강가에서 하나하나 골라낸 감탄스런 저 수석들을 볼때마다 강물이 나를 내려다 보며 아직 멀었다 하는것 같소이다. 짧은 인생 아무리 발버둥 쳐도 흐르는 강물이 빚어낸 걸작들에 비해 내손으로 그려낸 그림이 몇장이나 만족스럽겠소."

화가의 길목에 들어서다
1955년 오성 중학교 진학을 위해 대구로 이사를 가야만 했다. 6.25 전쟁 때는 전국의 피난민이 대구로 모여들었다.
이때 임시로 지어 놓은 판자집이 많았고 전쟁이 끝나자 사람들이 떠나간 피난민 수용소는 사방이 빈집이라 칠성동에 있는 북문수용소란 판자촌에 쉽게 이사할 수 있었다고 한다.
어머니는 국수단지를 이고 대구역 뒤편 하역 작업을 하는 사람들을 주로하여 국수장사를 했고 여동생은 방직공장에 나가서 일해야 했다. 이원좌 화백도 낮에는 우산공장에 나가 일을 했고 야간학교를 다녀야 했을 만큼 이 시절의 삶은 궁핍했다.
이때 부터 수채화를 잘 그린다며 주변의 칭찬도 잦아지고 전국 사생대회에서 곧잘 상도 받아왔다. 어머니와 친척들은 그가 집안을 일으킬수 있을 것이라 믿고 묵묵히 뒷바라지 했다.

홍익대학교 서양학과에 입학했지만 장학금을 받기 위해 동양화과로 전과 하였다. 이때 다시 품게된 수묵화의 매력은 그의 마음에 자리잡은 그림에 대한 호기심을 확신으로 변화 시켰다.
하지만 그림만으로는 먹고 살길이 막막했던 시절이라 서울 교원이 된 뒤에 중학교 미술교사와 대학 교수로 일하며 휴일과 방학이면 스케치북을 들고는 집을 나서 전국의 산과 강을 둘러 여행하며 그림 그리기에 매진한다.
몇번의 국전과 대회 수상 이후에는 얼마든 편안하고 안정된 상황에서 그림에 매진할 수 있는 제안들이 이어졌다. 하지만 그리고 싶을때 그리고, 그리고 싶은 것을 그릴 수 있으며, 간섭과 타협 없이 자유롭게 그리는 즐거움을 위해 모든 것을 뒤로 하고 그림에만 몰두 하겠다 선언 한다.
이때가 1989년이다.

작가연보

전시

  • 1965년-1978년, 제14, 15, 27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 입선, 국립현대미술관
  • 1966년, 신인예술상전, 경복궁미술관
  • 1974년-1978년, 연소회전, 신문회관
  • 1974년-1989년, 창조회전, 경복궁미술관
  • 1974년, 백양회공모전, 덕수궁미술관
  • 1975년-1993년, 개인전 (10회)
  • 1977년, 61 동문전, 견지화랑
  • 1977년, 제5회 서울시교원미술전, 출판문화회관
  • 1977년, 한·일작가교류전, 미도파화랑
  • 1978년-1979년, 미술단체초대연립전, 국립현대미술관
  • 1978년-1979년, 제1회 중앙미술대전특선1회, 입선1회, 국립현대미술관
  • 1979년 제3회 개인전 야송연대산수화전 (세종문화회관 외 5개 화랑)
  • 1980년 제4회 개인전 대구 대백화랑
  • 1982년, 제2회 한국화협회전, 동덕미술관
  • 1983년, 개관기념전, 경인미술관
  • 1983년, 대만문화대상 초대전, 대만 화강박물관
  • 1984년, 창조회 초청전, 대만 국립역사박물관
  • 1987년-1988년, 제4회 신묵회전, 서울갤러리
  • 1987년, 제5회 야수산수화전, 서울갤러리
  • 1987년, 한국화100인전 , 세종문화회관
  • 1988년, 88 서울회화제, 롯데백화점
  • 1988년, 88 한국화신구상대전, 전북예술회관
  • 1988년, 서양화소품초대전, 롯데미술관
  • 1988년, 한국화 중견3인 초대전:박종기,이왈종,이원좌, 신세계미술관
  • 1989년, 89 한국화신구상대전, 미술회관
  • 1989년, 대북원묵회, 한국신묵회연합전, 대만 대북국립역사박물관
  • 1989년, 정묵회 창립전, 아랍미술관
  • 1989년, 현대미술초대전, 국립현대미술관
  • 1991년, 현대미술초대전, 국립현대미술관
  • 1992년, 91 신소장품전, 국립현대미술관
  • 1992년 국립현대미술관 영구소장 (산성계곡도)
  • 1993년, 청량대운도 발행
  • 1994년 서울정도600년 야송화전 예술의 전당
  • 1994년, 서울국제현대미술제, 국립현대미술관
  • 1995년, 한국전통산수화전, 국립현대미술관
  • 1996년, 오늘의한국화-그 맥락과 전개전, 덕원미술관
  • 1999년, 야송 회갑전 갤러리 상
  • 2000년, 국립극장50주년 기념화 금수강산도 (275*2200cm)
  • 2001년, 한국원로화가100인전, 세종문화회관
  • 2003년, 고려대학교 100주년 기념화 (관청폭포도)
  • 2004년, 부산시립 미술관 초대전
  • 2004년, 미술세계창간20주년 초대전 인사아트 갤러리
  • 2005년, 한국의해 초청 뉴넨시 초대전 뉴넨시테크노폴리스
  • 2005년, 아트코리아 10주년 기념 초대전 세종문화회관
  • 2008년, 야송화업 70년전 세종문화회관
  • 2016년, 청량산 실경산수화 특별전 청량산박물관
  • 2018년, 갤러리 미술세계 초대 개인전

수상

  • 경북학술예술제 일등상
  • 1966년 신인예술상전
  • 1977년 제5회 서울교원미전 교육감상
  • 1978년 제1회 동아미술제 입선
  • 1978년 제1회 중앙미술대전 특선
  • 1979년 제2회 중앙미술대전 입선

위촉

  • 1998년 대한민국 미술대전 심사위원
  • 2005년 제26회 신라미술대전 심사위원장 (경주문화원)
  • 2005년 의제허백년 미술대전 심사위원 (광주시청)
  • 2008년 겸재진경산수화 미술대전 심사위원 (광주시청)
  • 2015년 제36회 신라미술대전 심사위원장 (경주문화원)

기관

  • 1969년-1975년 관악고등학교, 광희중학교, 연서중학교 교사
  • 1979년-1989년 숭전대학교, 강남대학교, 경원대학교 교수
  • 2005년-2019년 군립청송야송미술관 초대관장